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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DOCU/History Written on 2008.03.31 23:17
함석헌 [咸錫憲]
1901. 3. 13 평북 용천 출생 ~ 1989. 2. 4 서울 사망.

1916년 양시(楊市)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3학년 재학중 3·1운동을 맞아 당시 숭덕학교 교사인 함석은에게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평양에 배포한 사건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1921년 정주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1923년 졸업했다. 이때 민족주의자인 안창호·조만식·이승훈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8년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했으며 1927년 도쿄에서 김교신·유석동 등과 함께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유학시절 일본인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金監三]의 성서집회의 영향을 받아 이후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1928년 귀국 후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0년에 평양교회 송산리 농사학원장을 지냈고, 1942~43년 고향인 용천에서 〈성서조선〉 필화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45년 평안북도 자치위 문교부장을 지냈고, 1947년부터 학교와 단체를 상대로 성서강론을 했다.

1958년 발표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로 인한 필화사건은 자유당 시절의 대표적 필화사건이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종교인으로서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등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1961년 7월 〈사상계〉에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5·16군사정변에 해한 한국에서의 첫 비판을 발표해 또다시 필화를 입기도 했다. 1960~89년에는 퀘이커교 한국대표로 미국 국무부의 초청을 받았다.

1970년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10여 년 간 발행인·편집인·주간으로 있으면서, 1980년 1월 폐간당할 때까지 여기에 발표한 많은 글과 강연 등을 통해 민중계몽운동을 폈다.

1984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을 역임했고 1985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추천받았다. 주요 저서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32~33 : 뒤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개제)·〈역사와 민족〉(1964)·〈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1984)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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